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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개발서 같은 책만 보고 싶은 책 리스트에 넣어놓다가 문득 너무 삭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 눈에 띈 책은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이다. 파란색 계통의 표지가 시원하니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번에는 따뜻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힐링 소설을 기대하며 표지를 넘겼다.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

책 정보

  • 제목 :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
  • 저자 : 마치다 소노코
  • 출판사 : 모모

독서기록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일본과의 감정은 그리 좋지 않지만 외국에 나가보면 일본만큼 우리나라 분위기와 친숙한 곳도 없는 것 같다. 뭔가 이국적이면서도 닮은 듯한 분위기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면서도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나와 같은 또래들은 일본 문화도 많이 경험하며 자랐다. 특히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서 일본을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많고 팬층도 꽤나 된다. 물론 너무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진 사람들을 오타쿠와 같은 명칭으로 비하하며 이상하게 바라보기도 하지만 일본 특유의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나도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를 좋아했었다. 이웃집 토토로의 여름 시골 풍경이라든지 드라마들의 평범한 학교 생활들의 모습들을 보면 소소하지만 편안한 느낌이 든다.

  이번에 읽은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은 기타큐슈 모지항이라는 항구에 텐더니스 편의점을 중심으로 소소한 주변 사람들의 에피소드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옴니버스형식인 만큼 나의 상황과 좀 더 맞는 에피소드들을 더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모든 에피소드들의 주인공들이 저마다 공감할만한 고민들과 상황들로 따뜻한 여운을 줬다. 

  난 이 중에서 '멜랑콜리 딸기 파르페', '꼰대 할아버지와 부드러운 달걀죽'이 지금의 상황들과 맞물리며 기억에 남고 더 재미있게 읽었다. 

 

  • 멜랑콜리 딸기 파르페

  중학생 아즈사의 이야기이다. 중학생 아즈사는 엄마의 친구의 딸, 엄친딸 '미즈키'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단짝으로 자랐다. 엄마끼리도 친한 만큼 자연스레 친구가 된 것이다. 모든 엄친딸 엄친아들은 그렇듯 미즈키는 똑 부러지며 모범적이고 성적도 좋을 뿐 아니라 운동도 잘하는 아이이다. 이에 반해 아즈사는 조용하고 똑 부러지게 말할 줄도 모르며 그저 미즈키의 그늘에서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그저 함께 다니는 아이이다. 아즈사는 적당히 미즈키의 기분을 맞추고 뜻을 따르며 생활하지만 점점 맞지 않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루는 민트라는 식물은 생육이 왕성하고 항염작용에 탁월하지만 주변 식물들을 모두 시들게 해서 결국 민트만 남게 된다는 것을 들으며 "왠지 미즈키 같네."라고 생각하게 된다. 미즈키는 자신의 주장이 확고하고 모범적이지만 그 확고하고 밀어붙이는 주장으로 아즈사 자신은 그 그늘에서 말라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즈사는 텐더니스 편의점에서 매주 디저트를 먹으며 자신에게 위로가 되는 이런 디저트를 만드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꿈을 꾼다. 하지만 미즈키는 이러한 아즈사의 꿈은 생각지도 않고 그저 디저트가 몸에 나쁘다며 보호자처럼 꾸짖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즈키의 눈밖에 난 나유타와 친해진 아즈사를 못마땅해하기도 한다. 결국 아즈사는 미즈키에게 본인의 뜻을 정확히 밝히고 그 그늘에서 벗어나는 내용이다. 

  최근 딸이 크면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노는 시간도 늘었다. 유치원 초기만 하더라도 친구들과 있어도 엄마를 찾고 친구들과는 논다고 볼 수 없는 형태였는데 최근 아내를 통해서 듣고 딸이 노는 것을 보니 친구들과 노는 시간을 좋아하고 곧잘 어울려 노는 것 같다. 그런데 아내를 통해 들은 친구 중에 우려되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미즈키처럼 본인 의사가 강하며 놀이를 할 때도 친구들을 진두지휘하는 듯하다. 옆에서 어른이 보면 영악해 보일 정도이다. 본인은 가만히 있고 친구들을 시키거나 본인이 원하는 놀이만 한다고 하는 등 무리를 이끌며 자신의 의견만 강요하는 것이다. 아직 어린아이들은 리더십처럼 보이며 자기주장이 강한 그 미즈키와 같은 아이의 말을 듣는데, 중요한 것은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그런지 그 말을 잘 들으며 따른다는 것이다. 나이를 좀 더 먹고 그렇게 이기적인 성향을 보이는 아이는 결국 아이들로부터 외면받지 않을까 싶기는 하지만 요새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아내는 울화통이 터지는 모양이다.

  책에서 이 에피소드를 보며 딸아이의 중학생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친구들과 큰 다툼 없이 주변 친구들 말에도 귀 기울이며 양보할 줄도 알고 자기가 원하는 것에는 뚝심을 지키며 컸으면 좋겠다. 지금은 어려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온순하고 나이에 비해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도 아는 착한 딸이다. 나와 아내도 어려서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아내는 착하기만 한 게 싫다고 한다. 그래서 남들이 착하다고 하는 게 칭찬 같지가 않다고 한다. 가끔 거절하지 못하거나 남이 싫어하는 말을 하지 못해 힘든 경우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착하고 온순하다는 것은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장점이고 이 장점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살아야 하는 공동체 사회에서 큰 무기라고 생각된다. 다만 본인의 기준과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야 이러한 착함을 무기로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즈키처럼 남에게 휩쓸리며 본인을 잃어버릴 수 있다. 본인은 땅에 꼿꼿하게 서있되 유순하게 흔들리며 대처할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딸이 지금처럼 착하고 순수한 마음은 유지하고 마음이 강해졌으면 좋겠다. 마음이 강해지고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자존감을 키우는 방법은 어려서부터 받는 부모의 무조건적인 무한한 사랑이라고 생각된다. 세상에 나를 무조건적으로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무조건적인 편이 있다는 것만으로 세상 살아가는 데에는 큰 용기가 된다. 이러한 용기에 자존감이 큰 아이는 작은 강아지처럼 두려움을 향해 크게 짖지 않는다.  따라서 딸이 작은 문제들은 유연하게 넘기며 많은 사람들에게 상냥하고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 나도, 아내도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만큼 딸도 그 사랑 다 받고 마음 건강한 아이로 컸으면 좋겠다. 미즈키와 같은 아이들에게 마음이 침범당하지 않도록 사랑을 듬뿍 주어 자존감이 넘치는 아이로 말이다. 

 

  • 꼰대할아버지와 부드러운 달걀죽

  소설의 주 무대인 텐더니스 편의점은 고령 노인들이 사는 고령자 전용멘션의 1층에 있다. 이 멘션에는 다키지와 준코부부도 살고 있다. 다키지 할아버지는 평생을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을 했고 정년을 맞이하여 은퇴한 뒤 조용한 부두 마을로 이사를 온 것이다. 다키지할아버지는 젊을 때 일만하느라 가정에는 소홀했지만 이제는 남은 여생을 아내와 함께 조용한 마을에서 편히 보내기를 소망하며 이사를 했다. 하지만 아내 준코는 이제 아이를 결혼시키고 하루하루 본인의 즐거움을 위해 힘쓰고있다. 열심히 편의점 점장의 팬클럽 활동에도 참여하고 부녀회 아줌마들과 친목도 이루며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왠지 다키지는 더 쓸쓸한 마음이다. 딸인 나나오도 아빠는 엄마를 구속한다며 엄마 편이다. 다키지는 이러한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저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있고 자신은 자신의 역할인 처자식이 편히 살게 하기 위해 돈 버는 데에 집중을 했고 아내는 여자로서 가정을 지켰으면 좋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이렇게 의견이 다르고 멀어져 가는 듯 보이지만 아내 준코가 감기에 걸리며 다키지가 간호를 하게 되는데 평생 간호를 해본 적이 없던 다키지는 이것을 계기로 본인이 가정에 소홀했다는 점을 인정하게 된다. 아내 준코도 열심히 간호하는 다키지에게 그동안 멋대로 굴었다며 미안해한다. 준코의 친구였던 나미에가 죽으며 더 늙기 전에 버킷리스트를 실현하고 싶다고 하며 인생 2막의 버킷리스트를 함께 정해서 실현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다키지는 가정에 소홀했던 것에 미안하다고 하지만 준코는 부부는 서로를 키우고 그렇게 키운 건 본인이라며 모든 것이 다키지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부부는 가장 가까운 사이이면서 인생을 함께하는 공동체이다. 뜻이 너무 맞지 않는다면 같이 사는 그 세월이 너무 힘들 것이다. 인생의 1/3 또는 1/4정도의 구간에서 만나 남은 인생을 함께하는 부부는 좋든 싫든 서로에게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부부는 서로를 키운다' 젊은 나이에 만난 둘은 그렇게 서로를 키우며 함께 늙는다. 가족으로, 친구로, 서로의 보호자로, 아이의 양육자로 대부분의 것을 공유하며 함께 키우고 성장하는 사이인 것이다. 아내와 나도 20대 초반에 만나 꽤 많은 부분이 다르다는 것도 인정했고 지금은 다른 부분을 존중한다. 또 문제를 다르게 대하는 태도에서 서로 배우기도한다. 나는 위험해 보이는 것, 인생에 도움이 안되 보이는 것 등에 통제와 보호를 많이 받으며 자랐다. 장모님은 아내를 비교적 좀 더 자유롭게 기르셨고 아내는 딸이 하는 것들을 웬만하면 하게 놔두고 지켜본다. 쇼파에서 뛰어내리기도, 4살쯤의 가위질도, 장난감을 거실에 모두 쏟아버리기도, 음식을 같이 만들겠다고 하며 부엌을 어지르기도 모두 옆에서 보며 도와줄 뿐 기꺼이 해보도록 놔둔다. 나는 처음 아이가 좀 위험해 보이는 곳에서 뛰는 것도 가위질도 모두 불안해하며 말렸었고 거실을 어지르는 장난, 음식을 같이 만들면 뻔히 더 더러워질 부엌을 생각하며  안된다는 말을 자주했다. 하지만 나는 딸에게 대하는 아내의 태도가 맞다고 생각되고 지금은 그것에 따른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안된다는 말에 입을 자주 막고 딸이 직접 해보고 싶다는 것들을 기꺼이 해보게 해준다. 나에게 알게 모르게 있던 불안감들을 아내는 해도 괜찮은 일로 바꿔 준 것이다. 이와 반대로 아내도 알게 모르게 불안감이 높은 부분들이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남들에게 싫은 말도 잘 못하고 당황스러운 일에 빠르게 대처하기 힘들어하는데 나와 얘기하고나면 한결 편안해하는 모습이다. 이렇게 서로를 성장시키고 키우며 잘 크고 있다고 생각된다. 아직 같이 살 날이 더 많다. 그러므로 서로를 성장시킬 기간이 많이 남았다. 다행히도 나와 함께 나이 드는 것을 즐거워하는 아내를 만났고 나도 우리 가족과의 매일이 즐겁다. 또 10년, 20년 후의 모습이 기대가 된다. 기대가 되는 미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 즐겁게 살아갈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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